요즘은 어디서나 자동화 이야기를 합니다
엑셀 고급 함수를 쓰고, 매크로를 짜고, AI로 파이썬 코드를 짜고
그런데 막상 내 업무에 적용해보면, 생각만큼 잘 맞지 않습니다
누군가 잘 만들어둔 템플릿도 나에게 맞게 손을 봐야 하고, 이건 자동화가 어려워요 라는 말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도구는 분명히 늘었는데, 일은 기대만큼 줄지 않습니다
자동화가 안 되는 건 도구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자동화가 잘 안 되는 게 도구를 몰라서도 게을러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자동화가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같은 거래처럼 보여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쉽게 이건 자동화하면 돼요 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건 일을 단순하게 못 봐서가 아니라, 예외를 더 많이 봐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회계 업무가 유독 자동화가 어려운 이유
가장 흔한 장면은 이렇습니다
그건 케이스가 다양해서 자동화가 안 돼요 라는 말이 나옵니다
문제는 케이스가 다양한 게 아닙니다
한 업무 안에 매번 같은 기준으로 처리되는 부분과,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을 나누어 보지 않고 업무 전체를 자동화하려다 보니, 어디서 막히는지조차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반복 업무와 판단 업무가 자꾸 섞이는 데는 네 가지가 깔려 있습니다
- 1
같은 거래를 보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같은 전표를 두고도 어떤 담당자는 외부감사 관점에서, 어떤 담당자는 세무 관점과 과거 문제되었던 히스토리까지 봅니다
무엇을 필수로 볼지가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어디까지가 규칙이고 어디부터 판단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 2
필요한 데이터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숫자는 ERP에, 실적은 엑셀에, 왜 지난달과 다른지 사유는 메일에 있습니다
근거가 흩어져 있으면, 매번 같은 처리인지 그때그때 다른 처리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 3
예외가 문서가 아니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거래처 세금계산서는 늘 다음 달 초에 들어와서, 이번 달 비용으로 잡으려면 매번 미지급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담당자뿐입니다
기억에만 있는 예외는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과 자꾸 섞여 들어옵니다
- 4
누가 어디까지 맡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현업이 입력하고, 정산이 전표를 상신하고, 회계가 검토하고, 세무가 세무 신고를 위해 다시 봅니다
이 경계가 흐려지면, 도구에 넘길 일과 사람이 판단할 일이 결국 담당자 한 사람에게 다시 모입니다
네 가지 모두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 업무와 판단 업무가 한데 섞여 있는 구조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도구를 고르기 전에 먼저 할 일
여기까지 오면 보통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업무 환경을 바꿔줄 좋은 도구나 AI 하나 쓰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정리되지 않은 업무 위에 도구만 올리면, 자동화는 반복 업무뿐 아니라 판단이 필요한 부분까지 처리하려다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LLM도, Python도, ERP도 같은 입력에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도구를 고르기 전에, 무엇이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이 아직 사람이 검토해야 할 지점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한 가지 질문으로 나누기
구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업무 하나를 두고 이렇게 물어보면 됩니다
이 일은 매번 같은 기준으로 처리되나요? 아니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하나요?
매번 같은 기준으로 처리된다면, 먼저 자동화 후보로 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면, 바로 자동화하기보다 기준을 정리하거나 사람이 검토해야 할 지점으로 남겨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법인카드 증빙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날짜와 금액을 맞추는 건 매번 같지만, 그게 접대비인지 복리후생인지 구분하는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 업무 안에서도 이렇게 반복되는 부분과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나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줄
이번 달 내가 수행했던 업무를 골라, 방금 질문을 던져봅니다
매번 같은 기준으로 처리되는 부분과, 상황에 따라 판단이 필요한 부분을 한 줄로 나눕니다
매번 같은 쪽은 자동화 후보가 되고, 판단이 필요한 쪽은 기준을 정리하거나 사람이 검토해야 할 지점으로 남습니다
자동화는 개발이 아니라 이 구분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을 도구에 넘기고 무엇을 사람이 검토할지 한 줄씩 나누어두면, 반복은 도구에 맡기고 판단은 사람이 하게 되는 구조가 생깁니다
회계 실무자의 역할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데 있지 않고, 무엇을 도구에 넘기고 무엇을 내가 판단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동화 후보로 나온 그 한 줄을 프롬프트로 바꾸면, 반복 확인부터 도구에 맡겨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