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사례는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세금계산서를 자동으로 발행한다, 전표를 자동화해서 일이 줄었다, 결산을 이렇게 줄였다
읽으면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내 업무에 옮겨보려고 하면, 한 문장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건 그 회사 얘기지, 우리랑 안맞는데
규모가 달라서, 업종이 달라서, 조직 구조가 달라서
이유는 매번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좋은 사례가 내 업무에 이식되지 못한 채 지나갑니다
우리는 좀 달라서요 라는 말은 관찰의 흔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는 짚어두고 싶습니다
오히려 내 업무의 예외를 잘 알수록 그 말이 더 잘 나옵니다
그 회사의 매입 자동 매칭이 우리 매입 규모에는 안 맞는다는 걸 알고, 저 회사의 결산 자동화가 우리 결산 일정, ERP, 보고 양식에는 안 맞는다는 걸 아니까요
그래서 남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다르니까 라고 말하는 건 관찰력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관찰이 관찰로 끝난다는 것에 있습니다
좋은 사례가 내 일로 잘 안 넘어오는 이유
그렇다면 좋은 사례는 왜 내 일로 잘 옮겨지지 않을까요?
가장 흔한 장면은 이렇습니다
남의 사례와 내 업무를 표면적으로 비교합니다
저기는 매입 자동 매칭이지, 나는 매출정산인데
저기는 대기업 결산이지, 나는 스타트업인데
표면만 놓고 보면 다 다릅니다. 규모, 업종, 프로세스, 시스템, 사람
그래서 어디를 봐도 우리 것과 똑같은 사례는 없습니다
정리하면, 좋은 사례가 내 일로 잘 안 넘어오는 데는 네 가지가 깔려 있습니다
- 1
사례를 사례의 표면으로 기억합니다
그 회사는 매입에 이런 걸 붙였구나, 저 회사는 결산에 저런 걸 붙였구나
붙인 도구와 대상 업무의 조합으로만 기억하면, 내 업무를 사례에 맞출 수 없습니다
- 2
내 업무를 업무 전체로만 봅니다
매출정산은 한 덩어리, 세무 신고는 한 덩어리, 결산은 한 덩어리로 봅니다
덩어리끼리 비교하면 크기, 주기, 참여자가 다 다르니 자동화의 범위가 잘 안 보입니다
- 3
예외가 커보여서 사례 전체를 밀어냅니다
우리는 거래처마다 조건이 달라서, 우리는 결재선이 달라서, 우리는 시스템이 달라서
예외 한 가지가 사례 전체를 밀어내는 벽이 됩니다
- 4
어디에 적용할 지가 없습니다
사례를 보고 좋다까지는 왔는데, 그 다음에 내 어떤 업무에 적용해 볼 지가 없습니다
적용할 업무가 없으면 좋은 사례는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네 가지 모두 사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례와 내 업무를 적용할 지점이 없어서에 가깝습니다
사례를 더 찾기 전에 먼저 할 일
여기까지 오면 보통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업종 사례를 더 많이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요즘 자주 나오는 장면입니다
대표님들이 동종업계 미팅을 다녀오시고 나면, 어디는 AI를 활용해서 이런 걸 자동화했다더라, 우리도 해보자 라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흐름은 사실 낯설지 않습니다
10년 전 ERP를 도입하던 시절에도 똑같이 있었던 장면이거든요
옆 회사가 ERP를 붙였다더라, 우리도 도입하자로 시작한 사례들은, 정작 도입 후에 ERP 따로, 실적 자료 따로 관리되는 자리로 남았습니다
도구는 늘었는데 자료는 오히려 더 흩어졌습니다
AI 자동화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례 하나를 그대로 붙이기 전에 그 사례의 구조부터 읽어야 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가까운 사례를 찾아도, 완전히 같은 회사는 없습니다
같은 업종 안에서도 매출 구조, 거래처 구성, 시스템 조합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사례를 더 찾기 전에, 지금 본 사례를 표면이 아니라 구조로 다시 읽어야 합니다
한 가지 질문으로 구분 방식을 잡기
구조로 다시 읽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사례 하나를 두고 이렇게 물어보면 됩니다
이 사례에서 반복으로 넘긴 부분은 무엇이고, 판단으로 남긴 부분은 무엇인가?
이 두 줄이 나오면, 그 사례가 반복과 판단을 어떻게 나눴는지가 보입니다
그 다음 내 업무를 두고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달 내 업무에서, 반복으로 넘길 부분과 판단으로 남길 부분이 같은 방식으로 나뉘는 지점이 있는가
매입 자동 매칭 사례로 보면 이렇습니다
반복은 세금계산서 번호와 발주 번호를 붙이고, 공급자 사업자번호가 우리 거래처 마스터에 등록되어 있는지 대조하고, 세금계산서 금액이 발주 금액, 입고 수량과 서로 맞는지 확인하고, 사전 매핑 규칙대로 계정과목과 부가세 코드를 자동 지정하고, 승인일자를 해당 회계기간에 맞게 배부하고, 미매칭 건을 별도 목록으로 자동 추출하는 일입니다
판단은 그 매칭이 예외 케이스인지 사람이 다시 볼 일인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내 회사는 매입 규모가 훨씬 작아 그 사례의 시스템은 안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매출정산을 두고 보면,
반복은 정산서 숫자를 회계 시스템에 옮기고, 거래처별 합계와 총합계가 일치하는지 검증하고, 공급가액과 부가세를 자동으로 분리하고, 매출 계정을 사전 매핑 규칙대로 자동 분개하고, 미수금 잔액을 자동으로 업데이트하는 일입니다
판단은 거래처마다 다른 정산 주기와 수수료율이 맞게 적용되었는지 확인하고, 이번 달 조정이나 차감 사유가 정당한지 검토하는 일입니다
표면은 매입 매칭과 매출정산으로 다르지만, 두 업무 모두 반복과 판단을 나누는 방식은 같습니다
매번 같은 규칙으로 처리되는 대조, 분개, 집계는 반복으로 넘기고, 상황에 따라 사람이 확인해야 하는 예외 판별과 사유 검토는 판단으로 남기는 방식입니다
이 구분 방식이 보이면, 남의 사례에서 자동화한 지점을 내 업무의 어느 단계에 적용할지가 보입니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줄
최근에 본 자동화 사례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그 사례에서 무엇이 반복이었고 무엇이 판단이었는지 한 줄로 나눠 적습니다
그 다음 이번 달 내 업무 중 하나를 골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반복은 어디이고 판단은 어디인가
표면이 달라도 반복과 판단이 같은 방식으로 나뉘는 자리가 있으면, 그 사례의 자동화 지점을 내 업무의 그 자리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좋은 사례가 내 일로 안 넘어오는 건 사례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례와 내 업무를 연결하는 구분 방식이 아직 안 잡혔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 구분 방식은 사례를 더 봐서가 아니라, 지금 본 사례를 한 번 나눠 적어보는 데서 잡힙니다